노화는 세포가 낡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몸이 정상 범위를 유지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점점 좁아지는 과정이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늙으면 병이 많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늙으면 병이 많아지는 걸까.
세포가 낡아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젊은 사람도 세포는 낡는다. 차이는 따로 있다.
❷ 몸이 정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몸은 체온, 혈압, 혈당, 전해질 등 수십 가지 수치를 항상 일정한 범위 안에 유지하려 한다. 이를 항상성(homeostasis)이라 한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한다. 수치가 조금 흔들려도 몸이 되돌릴 수 있는 범위, 즉 버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을 때는 이 공간이 넓다. 폐렴에 걸려도 뇌는 멀쩡하고, 수술 후 회복도 빠르다. 몸이 충격을 흡수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공간이 좁아진다. 이것을 **homeostenosis(항상성 협소화)**라 한다. homeostasis(항상성)에서 stenosis(좁아짐)가 합쳐진 개념이다.
❸ 공간이 좁아지면 실제로 어떤 일이 생기는가
중환자 예후를 예측하는 APACHE 점수를 보면 체온, 맥박, 호흡수, 혈압, 산소포화도, pH, 전해질, 크레아티닌 등의 수치를 측정한다. 이 수치들의 변동폭이 얼마나 심한가를 보는 것이다.
결과는 뚜렷하다. 젊은 사람은 이 수치들이 상당히 흔들려도 버틴다. 노인은 조금만 흔들려도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APACHE 점수에 나이 자체가 항목으로 들어간다.
또 하나의 증거가 섬망(delirium)이다. 노인이 폐렴이나 심근경색을 앓으면 갑자기 지남력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 뇌와 직접 관련 없는 전신 문제인데도 뇌가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뇌가 전신 컨디션 저하를 감당할 여유 공간을 이미 잃었기 때문이다. 공간이 남아 있었다면 흡수했을 충격이, 공간이 없으니 증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❹ 결국
homeostenosis는 아직 완전히 증명된 법칙이 아니라 개념(concept)이다. 하지만 이것을 뒷받침하는 임상 증거는 상당하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노인 환자를 볼 때의 관점을 바꾸기 때문이다. 노인에서 어떤 증상이 나타났다면, 그 원인이 꼭 뇌나 해당 장기에만 있지 않을 수 있다. 전신 어딘가에서 온 충격이 여유 없는 취약한 장기를 통해 터져 나오는 것일 수 있다.
공간이 수렴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것이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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