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세동에 WPW 증후군이 동반되면, 방실결절(AV node)의 여과 기능이 우회되어 심방의 빠른 신호가 심실로 그대로 전달되고 돌연사에 이를 수 있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심방세동이 있을 때 박동수 조절 목적으로 베타차단제나 딜티아젬 같은 약을 쓴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이 약들이 오히려 환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면? WPW 증후군(Wolff-Parkinson-White syndrome)이 동반된 경우가 바로 그렇다.
❷ WPW 증후군에서 AV node가 하던 역할이 사라진다
정상적으로 심방에서 심실로 전기 신호가 전달되려면 반드시 방실결절(AV node)을 거쳐야 한다. AV node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심방에서 오는 과도한 신호를 걸러주는 안전 장치 역할을 한다. 심방세동처럼 심방에서 분당 수백 개의 불규칙한 신호가 쏟아질 때, AV node가 이를 걸러서 심실에는 적절한 수만 전달한다.
WPW 증후군에서는 이 경로 외에 심방과 심실을 직접 연결하는 부전도로(accessory pathway, bypass tract)가 존재한다. 부전도로에는 AV node 같은 여과 기능이 없다. 심방의 빠른 신호가 여과 없이 그대로 심실로 전달된다.
그 결과 심실이 분당 200~400회로 뛰게 될 수 있다. 이 속도에서는 심실이 수축이 아닌 세동(fibrillation) 상태에 빠져 혈압이 유지되지 않고 돌연사에 이른다.
심전도에서 어떻게 보이는가
평상시 WPW에서는 부전도로로 먼저 일부 심실이 활성화되어 QRS 앞에 완만한 경사(델타파, delta wave)가 나타나고 PR 간격이 짧아진다.
심방세동이 동반된 WPW(AF with WPW)의 심전도에서는 넓은 QRS(wide QRS)에 불규칙한 RR 간격이 보인다. 넓은 QRS 빈맥이 보일 때 RR 간격이 불규칙하다면 AF with WPW를 먼저 의심해야 한다.
❸ 왜 AV node를 차단하는 약이 오히려 위험한가
베타차단제, 베라파밀, 딜티아젬, 디곡신은 모두 AV node 전도를 차단하는 약제다. 정상 심방세동에서는 이 작용이 박동수를 낮추는 치료 목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AF with WPW에서는 상황이 반대다. 이미 AV node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부전도로로 신호가 내려가는 게 문제인데, AV node를 추가로 차단하면 모든 신호가 부전도로로만 쏟아진다. 심실세동(VF)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 약들은 AF with WPW에서 금기다.
❹ 결국 — 치료는 부전도로를 없애는 것이다
혈역학적으로 불안정하면 즉각 직류 심율동전환(DC cardioversion)을 시행한다.
혈역학적으로 안정적이더라도 심율동전환이 권고된다. 현재는 안정적이어도 언제 불안정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치료는 **전극도자 절제술(catheter ablation)**로 부전도로를 제거하는 것이다. 절제 후에는 이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다. 심방세동을 같이 치료하려 할 경우, 부전도로 절제를 먼저 시행한 뒤 심방세동 치료를 결정한다. 시술을 거부하는 경우에만 차선으로 약물 치료를 고려하되, 위의 금기 약물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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