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헤모글로빈이 서서히 떨어질 때, 출혈도 철결핍도 용혈도 아닌 원인이 있다. 염증 자체가 빈혈을 만든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가 있다. 다른 기저 질환은 없었다. 2~3주 사이에 헤모글로빈이 14에서 9.8로 조금씩 떨어진다. 토혈도 없고 흑변도 없다.
처음 드는 생각은 위장관 출혈이다. 그래서 분변잠혈 검사를 내고, 과거 내시경 기록을 확인하고, 스테로이드나 항응고제를 쓰고 있다면 PPI를 추가한다. 동시에 철결핍성 빈혈, 엽산/비타민 B12 부족, 골수 억제, 용혈성 빈혈을 모두 평가한다.
그런데 찾아봐도 다 애매하다. 조금씩은 다 있는 것 같은데 이 정도의 빈혈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❷ 염증 자체가 빈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상황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 **염증에 의한 빈혈(anemia of inflammation)**이다.
몸에 염증이 있으면 세 가지 경로로 빈혈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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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이용 장애 — 몸 안에 철은 충분한데 세망내피계(reticuloendothelial system)에 갇혀서 적혈구 생성에 실제로 쓰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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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구 생존 단축 — 염증 물질들이 순환 중인 적혈구를 공격해 수명을 단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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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O(erythropoietin) 감소 — 콩팥에서 적혈구 생성을 자극하는 조혈인자 EPO가 염증 상태에서 감소한다.
즉 원료도 문제고, 만들어진 것도 일찍 부서지고, 만들라는 신호도 줄어드는 것이다.
❸ 이 빈혈을 치료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가
안타깝게도 염증에 의한 빈혈은 염증을 해결하는 것 외에 근본적인 방법이 없다.
- 철분 보충: 철은 충분히 있으므로 효과가 없다.
- EPO 투여: 이 상황의 주 문제가 아니므로 효과가 크지 않다.
- 수혈: 즉각 헤모글로빈을 올릴 수 있지만, 염증이 해결되지 않으면 다시 떨어진다.
수혈은 헤모글로빈이 7 정도 이하로 내려가거나, 빈혈로 인한 증상이 뚜렷하거나, 합병증이 우려될 때 시행한다.
❹ 결국
중환자실에서 원인 불명의 빈혈 앞에서는, 출혈과 영양 결핍을 배제한 뒤에도 염증 자체를 원인으로 인식해야 한다. 치료의 방향은 빈혈이 아니라 염증으로 향한다. 이 경우에는 빈혈 수치보다 기저 염증 상태가 호전되는 것이 더 중요한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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