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의 표준 약물 치료는 보상 기전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으며, ARNI는 그 흐름 위에서 natriuretic peptide(나트륨이뇨펩타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전략으로 등장하였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심부전 치료제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겨냥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ACE 억제제, ARB, 베타차단제, 스피로노락톤은 생김새도 계열도 다르지만, 교감신경계와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계(RAAS)라는 두 개의 보상 기전을 차단한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진다. 그런데 심부전이 진행되는 동안 몸 안에서는 이 보상 기전에 맞서는 힘도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❷ 보상 기전에 맞서는 natriuretic peptide는 왜 혼자 힘을 못 쓰는가
심부전 상태에서 심장의 filling pressure(충만압)가 올라가면 BNP(뇌나트륨이뇨펩타이드), ANP(심방나트륨이뇨펩타이드)가 분비된다. 이 물질들은 혈관을 이완시키고, 신장에서 GFR을 높이며, 알도스테론을 억제하고, 심장의 비대(hypertrophy)와 섬유화(fibrosis)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즉 보상 기전의 해악을 되돌리려는 방어 반응이다.
그러나 이 peptide들은 **neprilysin(네프릴리신)**이라는 효소에 의해 신속히 분해되어 비활성 형태로 전환된다. 활성화된 RAAS와 교감신경계에 맞서기도 전에 효력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 결과 보상 기전이 방어 기전을 압도한다.
❸ sacubitril은 neprilysin을 막아 방어 기전을 복원한다
이 관찰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neprilysin 억제제의 개발로 이어졌다. sacubitril(사쿠비트릴)은 neprilysin을 차단하여 natriuretic peptide의 분해를 막는다. 분해되지 않은 peptide는 혈관 이완, GFR 증가, 알도스테론 억제, 심장 리모델링 감소라는 본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된다.
처음에는 ACE 억제제와 neprilysin 억제제를 함께 쓰는 시도(omapatrilat)가 있었다. 두 경로를 동시에 차단하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ACE 억제제와 neprilysin 억제제가 모두 bradykinin(브라디키닌) 분해를 억제하는 탓에, bradykinin이 과도하게 축적되어 혈관부종(angioedema) 발생이 문제가 되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ACE 억제제 대신 ARB를 결합한 약이 바로 **ARNI(Angiotensin Receptor-Neprilysin Inhibitor)**이며, 현재 엔트레스토(sacubitril/valsartan) 상품명으로 사용된다.
❹ 결국
ARNI의 등장이 임상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그 이전까지 HFrEF 약물 치료가 사실상 한계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ACE 억제제 또는 ARB, 베타차단제, 스피로노락톤을 최대 용량까지 쓰고 나면 추가할 수 있는 약이 거의 없었다. SGLT2 억제제 또한 당뇨 치료제로 출발했지만, 당뇨 여부와 관계없이 심부전에서 심혈관 사망과 입원을 줄이는 효과가 확인되면서 지금은 표준 치료에 포함된다. SGLT2 억제제의 기전은 보상 기전을 직접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체액 감소와 혈당 조절을 통해 심장의 부담을 줄이는 독립적인 경로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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