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약이 심장을 망가뜨린다는 논리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것이다. 심장을 망가뜨리는 것은 약이 아니라 높은 혈압 자체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혈압약이 몸에 안 좋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심장이 피를 짜주는 게 혈압인데, 혈압약을 먹으면 그 기능이 마비된다거나, 피를 물게 만든다거나. 듣기에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논리들은 처음부터 방향이 반대로 놓여 있다.
❷ 혈압약이 심장을 망가뜨린다는 논리는 왜 성립하지 않는가
심장이 혈액을 내보내려면 혈압을 이겨야 한다. 혈압이 120/80mmHg라면 심장은 그 압력을 이기는 만큼만 힘을 쓰면 된다. 그런데 혈압이 190/110mmHg라면, 심장은 그 압력을 이기기 위해 훨씬 더 강하게 수축해야 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는 심근 비대(left ventricular hypertrophy)가 생기고, 혈관도 손상된다.
즉, 심장 기능을 망가뜨리는 것은 혈압약이 아니라 높은 혈압 그 자체다. 혈압약은 심장이 이겨내야 할 압력을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심장 입장에서는 오히려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피를 물게 만든다”는 표현도 혈압약과는 무관하다. 혈소판 기능을 억제해 혈액을 묽게 만드는 것은 아스피린(aspirin)이며, 이는 혈압약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약이다.
❸ 혈압약이 실제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는 무엇인가
혈압약이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제 이유는 하나다. 부작용이다. 그런데 부작용은 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 이뇨제(diuretic): 탈수, 전해질 불균형
- 칼슘 채널 차단제(calcium channel blocker): 발목 부종
- ACE 억제제(ACE inhibitor): 마른기침
이런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혈압약 자체를 끊는 것은 옳지 않다. 혈압약의 계열(class)이 여러 가지이고, 같은 계열 안에서도 약제마다 특성이 다르다. 부작용이 생기면 그 약이 맞지 않는다는 신호이지, 혈압 조절을 포기해야 한다는 신호가 아니다. 본인에게 맞는 약을 찾아가면 된다.
❹ 결국
혈압은 관리하기 어렵지 않다. 약이 잘 개발되어 있고, 부작용도 많지 않으며, 맞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 혈압약이 몸에 안 좋다는 막연한 이야기 때문에 혈압 조절 기회를 놓치면, 그 결과는 콩팥 기능 저하, 심장 기능 저하 같은 실제 합병증으로 돌아온다. 당뇨처럼 식사까지 바꿔야 하는 병과 달리, 고혈압은 약만으로도 충분히 관리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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