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콩팥병 환자에서 ACE억제제(ACEi)·ARB는 혈압을 낮추기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콩팥 손상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약이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고혈압 약은 혈압을 낮추는 것이 목적 아닌가. 만성콩팥병 환자에게도 혈압이 높으면 아무 혈압약이나 써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왜 ACEi·ARB를 “꼭”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일까.

❷ 만성콩팥병에서 무엇이 콩팥을 더 망가뜨리는가

만성콩팥병이 생기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레닌-안지오텐신-알도스테론 시스템(RAAS)이 활성화된다. RAAS는 원래 혈압을 유지하기 위한 정상적인 조절 축인데, 만성화되면 오히려 해가 된다.

RAAS가 활성화되면 사구체의 수출세동맥(efferent arteriole)이 수축한다. 수출세동맥이 좁아지면 사구체 안에서 혈액이 잘 빠져나가지 못해 사구체 내 압력이 올라간다. 압력이 높아지면 단백질이 여과막을 통해 소변으로 더 많이 빠져나가게 된다. 이것이 단백뇨다.

단백뇨 자체가 또 콩팥을 손상시킨다. 손상이 심해지면 RAAS는 다시 더 활성화된다. 즉, RAAS 활성화 → 사구체 내 고혈압 → 단백뇨 → 콩팥 손상 심화 → RAAS 재활성화로 이어지는 악순환(vicious cycle)이 돌아간다.

❸ ACEi·ARB는 이 악순환의 어디를 끊는가

ACEi·ARB는 RAAS를 억제함으로써 수출세동맥의 수축을 줄인다. 수출세동맥이 어느 정도 확장되면 사구체 내 압력이 낮아지고, 그 결과 단백뇨가 줄어든다. 단백뇨 감소는 이 악순환을 끊는 핵심 지점이다.

부수적으로 ACEi·ARB는 염증(inflammation)과 활성산소(ROS, reactive oxygen species)도 줄이는 역할을 하지만, 핵심 기전은 수출세동맥 확장을 통한 사구체 내 압력 감소와 단백뇨 감소다.

❹ 그래서

만성콩팥병 환자에서 ACEi·ARB는 혈압 조절이라는 일반적인 목적 외에, 콩팥 보호라는 별도의 목적을 갖는다. 혈압이 완전히 정상이더라도 단백뇨가 있고 만성콩팥병이 있다면 이 약을 써야 하는 이유가 된다. 단순히 혈압 수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콩팥 손상의 악순환을 끊는다는 시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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