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치료 거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현실적 조건이 치료 권고와 충돌할 때 생기는 구조적 문제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혈당이 잡히지 않아 인슐린이 필요한 상황인데, 환자가 “못 하겠다”고 한다. 교육도 받았고 실제로 병원에서 써보니 혈당도 잡혔다. 그런데 왜 퇴원 직전에 포기를 선언하는 걸까.
❷ 하루 한 번 주사가 불가능한 조건이 있다
란투스(glargine)는 24시간 지속 기저 인슐린(basal insulin)으로, 하루 한 번 일정한 시간에 맞으면 된다. 이론상 단순하다.
그런데 버스기사처럼 근무 스케줄이 매일 1시간씩 밀리는 직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벽 5시 출근 → 오후 2시 퇴근인 날이 있고, 오후 3시 출근 → 자정 퇴근인 날이 뒤섞인다. 인슐린을 아침에 맞겠다고 결정하면 늦은 저녁 근무 날은 운전 중에 맞아야 하고, 밤에 맞겠다고 하면 새벽 근무 날은 아예 기회가 없다. 승객을 태운 채 버스를 세우고 주사를 맞는 것은 현실에 없는 선택지다.
이 경우 의사가 처방을 바꿔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치료의 한계가 아니라, 직업 구조와 치료 요건이 충돌하는 사회적 문제다.
❸ 그렇긴 하지만, 인슐린이 안 듣는다는 말은 사실인가
“예전에 인슐린 써봤는데 안 됐다”는 말은 종종 제대로 된 조건에서 써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같은 환자가 병원 입원 중 란투스 18단위와 경구약 2종을 병합했을 때 혈당이 90~250 사이로 안정된 것이 그 증거다. 약이 안 듣는 게 아니라, 이전에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치료 성패의 상당 부분은 약 자체보다 약을 쓸 수 있는 환경에 달려 있다. 교육이 잘 갖춰진 시스템에서 집중적으로 배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❹ 그래서
“못 하겠다”는 말을 의지 부족으로 볼 수 없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현실적인 조건 안에서 최대한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 — 완벽하지 않더라도 가급적 일정하게, 하루 빠지더라도 계속 이어가는 것 — 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전부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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