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작(sensitization)은 통증 회로가 병적으로 예민해지는 과정이다. 조직 손상이 경고 신호를 내보내는 데 그쳐야 하는데, 통증이 스스로 증폭되고 유지되는 상태가 된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상처를 입었는데 상처 부위만이 아니라 그 주변까지 욱신거리고, 살짝 닿기만 해도 아픈 경험이 있을 겁니다. 또는 급성 편도염 때 음식을 씹다가 편도 근처가 스치기만 해도 극심하게 아픈 것도요. 염증이 상처 부위에만 있는데 왜 그 이상으로 아픈 걸까요? 그리고 대상포진이 다 나은 뒤에도 신경통이 수개월씩 계속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❷ 말초 감작 — 수용기의 역치가 낮아진다

조직이 손상되면 주변에서 다양한 염증 매개 물질이 쏟아집니다. 브라디키닌(bradykinin), 신경성장 인자(NGF),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류코트리엔(leukotriene), ATP, 히스타민(histamine), 세로토닌(serotonin) 등입니다.

이 물질들은 통증 수용기 말단을 자극하고, 세포 내 신호전달 경로를 통해 TRPV1, Nav1.7 같은 채널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내도록 유도합니다. 채널이 말단에 과도하게 밀집되면 어떻게 될까요? 원래 자극이 60 정도는 돼야 반응했던 수용기가 30만 돼도 반응하게 됩니다. 이를 역치(threshold)가 낮아진다고 합니다.

이것이 **말초 감작(peripheral sensitization)**입니다. 염증 매개 물질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인접한 감각 신경의 역치도 함께 낮추기 때문에, 손상 부위 밖까지 통증이 퍼지는 것입니다. 급성 편도염, 근육통, 수술 후 상처 통증이 유난히 심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❸ 중추 감작 — 척수 후각이 학습한다

말초에서 Aδ섬유와 C-fiber가 반복적으로 통증 신호를 보내면, 신호를 받는 척수 **후각(dorsal horn)**의 신경세포들이 점점 예민해집니다. 처음에는 일정한 자극이 들어와야 반응했지만, 계속 자극이 들어오다 보면 조금만 들어와도 “통증이다” 하고 위로 올려보내는 상태가 됩니다.

이를 **중추 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라 하며, 두 가지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 이질통(allodynia): 원래 아프지 않을 자극이 통증이 된다. 바람만 스쳐도 아픈 것.
  • 통각과민(hyperalgesia): 원래 아팠던 자극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이 과정을 통증의 기억(pain memory), 또는 **신경 가소성(neural plasticity)**이라 부릅니다. 통증을 잘 전달하는 방향으로 신경 구조 자체가 변하는 것입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 대표적입니다.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을 손상시키면, 손상된 신경이 지속적으로 자극 신호를 보내고 이것이 중추 감작을 일으킵니다. 바이러스가 사라진 뒤에도 신경통이 수개월씩 이어지는 것은 이미 변해 버린 중추의 신경 회로 때문입니다. 만성 요통, 섬유근통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❹ 그러므로

감작이 일어난 통증은 단순한 진통제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말초 감작에는 염증 매개 물질을 줄이는 접근(NSAIDs 등)이 필요하고, 중추 감작에는 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약제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심리적 요인과 스트레스 조절도 중요한 치료 요소가 됩니다. 통증의 원인만이 아니라, 통증 회로 자체가 어떻게 변해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만성 통증을 제대로 다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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