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필락시스 진단이 명확하지 않아 보이는 순간에도,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 이라는 단 하나의 원칙이 에피네프린 투여 결정을 이끈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진단 기준은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 환자 앞에 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정도 가지고 에피네프린까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 망설임이 언제 위험해지는지, 세 가지 사례로 살펴본다.
❷ 세 사례에서 망설임의 성격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
사례 1: 조영제 후 두드러기 + 약한 휘징
조영제 투여 수 분 이내에 전신 두드러기가 났고, 청진에서 약한 휘징(wheezing)이 들렸다. 환자 본인은 크게 힘들지 않다고 한다. “이 정도면 기다려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피부 증상 + 호흡기 증상으로 진단 기준 1을 명확히 충족하는 아나필락시스다. 지금 약한 휘징이 3분 뒤 완전한 기도 폐쇄로 진행할 수 있다. 아나필락시스의 경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 경우 에피네프린 근육 주사(intramuscular injection) 0.3~0.5mg은 주저 없이 투여한다.
사례 2: 조영제 후 두드러기 + 구토 1회, 이후 항히스타민제로 호전
전신 두드러기와 함께 배가 화끈거리고 구토가 1회 있었다. 항히스타민제인 페니라민 투여 후 두드러기가 좋아졌다. “좋아졌으니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다.
이 경우는 앞 사례보다 애매하다. 구토가 조영제 자체의 반응인지 아나필락시스의 위장관 증상인지 불분명하고, 두드러기는 이미 호전됐다. 그러나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피부와 위장관이라는 두 계통이 침범됐으므로 다계통(multi-system) 반응의 초기였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항히스타민제는 알레르기 증상을 완화할 뿐, 혈압 저하나 기도 부종을 예방하거나 치료하지 못한다. 페니라민으로 좋아졌다고 아나필락시스가 차단된 것이 아니다. 이 경우 에피네프린 투여를 진지하게 고려한다.
사례 3: 심근경색 병력 환자, 봄철 공원에서 쓰러짐 + 저혈압
60세 남성, 심근경색으로 스텐트 삽입 병력, 꽃가루 알레르기. 봄철 공원에서 “그때(심근경색)랑 똑같다”며 쓰러지고, 혈압이 90/60으로 떨어졌다.
꽃가루 노출이 불명확하다면: 심근경색의 근거가 훨씬 강하고, 알레르겐 노출 자체가 불확실하다. 이 경우 무조건 에피네프린이 아닐 수 있다. 단, 아나필락시스 가능성은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한다.
꽃가루 노출이 명확하다면: 알레르겐 노출 + 저혈압이라는 진단 기준 2를 충족하므로 아나필락시스다. 에피네프린 투여를 즉시 심각하게 고려하고, 심근경색에 대한 치료도 함께 진행한다. 이때 참고할 개념이 코니스 증후군(Kounis syndrome)이다. 아나필락시스가 관상동맥에 스트레스를 가해 이차적으로 심근경색을 유발한 상태로, 아나필락시스를 치료하는 것이 곧 심근경색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된다.
❸ 에피네프린 근육 주사는 얼마나 안전한가
에피네프린을 주저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그러나 근육 주사(IM)와 정맥 주사(IV)는 다르다. 정맥으로 들어가면 부정맥 등의 위험이 있지만, 근육 주사 0.3~0.5mg은 안전하다. 설사 아나필락시스가 아니었더라도 근육 주사로 인한 큰 문제는 드물다. 즉 에피네프린을 주고 나서 “필요 없었을” 가능성보다, 주지 않고 나서 “필요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❹ 그래서
아나필락시스 앞에서의 결정 원칙은 단순하다. 진단 기준을 충족하면 즉시 투여한다. 애매하지만 두 계통 이상이 침범됐다면 진지하게 고려한다. 다른 질환이 강력히 의심되더라도 아나필락시스 가능성은 계속 열어둔다. 항히스타민제로 호전됐다는 것은 안도의 근거가 아니다. 아나필락시스는 지켜보면 안 되는 상황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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