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치료는 단일 약제를 최대 용량으로 올리기보다 서로 다른 기전의 약 2가지를 조합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❶ 생각해 보셨나요?
고혈압약을 처방할 때 의사는 그냥 한 가지 약을 주고 용량을 올리면 안 될까요? 사실 예전에는 그렇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유럽 고혈압학회 가이드라인은 처음부터 두 가지 약을 같이 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왜 한 약을 강하게 쓰는 것보다 두 약을 조합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❷ 혈압을 낮추는 약의 기전은 어떻게 나뉘는가
고혈압약은 크게 네 가지 계열로 나뉩니다.
- A — ACE 억제제(ACE inhibitor) 또는 ARB(angiotensin receptor blocker). 안지오텐신(angiotensin) II의 작용을 막아 혈관을 이완시킨다. 콩팥과 심장에 보호 효과가 있어 가장 먼저 선택하는 약이다. ACE 억제제가 ARB보다 조금 더 효과적이지만 기침을 유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ARB가 훨씬 많이 쓰인다.
- B — 베타차단제(beta-blocker). 심박수와 심박출량을 줄인다. 최근 가이드라인에서는 일반 고혈압의 첫 번째 선택에서 밀려났고, 심부전·협심증·심근경색 이후처럼 심장질환이 동반된 경우에 주로 쓴다.
- C — 칼슘채널차단제(calcium channel blocker, CCB). 혈관을 직접 이완시킨다. 안전성이 높고 부작용이 적어 A와 함께 첫 조합으로 많이 선택된다.
- D — 이뇨제(diuretic). 나트륨과 수분을 배출해 혈액량을 줄인다. 사이아자이드(thiazide) 계열이 대표적이다. CCB 사용 중 부종이 심한 경우 D로 교체하기도 한다.
이 네 계열 가운데 같은 기전끼리는 동시에 쓰지 않는다. 예를 들어 ACE 억제제와 ARB를 함께 쓰면 효과는 늘지 않고 콩팥 부작용만 늘어난다.
❸ 실제 처방은 어떤 순서로 이루어지는가
유럽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제시한다.
- A 단독 또는 C 단독으로 시작한다.
- 조절이 불충분하면 A + C 조합으로 진행한다. 이 두 약은 서로 다른 기전으로 혈압을 낮추기 때문에 각각의 효과가 더해진다. C 사용 중 부종이 문제가 되면 C 대신 D를 붙여 A + D 조합을 쓰기도 한다.
- 여전히 조절이 안 되면 A + C + D 세 가지를 함께 쓴다.
- 이 세 가지로도 혈압이 잡히지 않는 경우를 저항성 고혈압(resistant hypertension)이라고 하며, 스피로노락톤(spironolactone)을 추가하거나 전문 기관 의뢰를 고려한다.
국내 진료 현황을 보면 ARB 사용 비율이 약 70%로 가장 높고, 그다음이 CCB 약 60%, 이뇨제 약 26% 순이다. 즉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 대부분은 이미 A + C 중심의 조합을 쓰고 있다.
단, 국내 심사평가원 고시는 1기 고혈압(140/90 mmHg 수준)에서 처음부터 두 가지 약을 함께 쓰는 것에 제약이 있어, 실제 처방은 가이드라인과 차이가 날 수 있다.
❹ 결국
고혈압약을 먹고 있다면 본인이 복용 중인 약이 어떤 계열에 해당하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약품명이 복잡하더라도 약학정보원에서 성분명을 확인하면 계열을 알 수 있다. 복용 중인 약에 부종이나 기침이 생긴다면 같은 단계에서 교체 가능한 계열이 있으며, 이는 의사와 상담할 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 세 가지 약을 써도 혈압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이차성 고혈압(secondary hypertension)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전문 진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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